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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요리 레시피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

디지털마켓어 2017. 9. 6. 14:40

요리를 하면서 느낀 것.

 

카레나베

 

 작년 8월달쯤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카레나베를 만들어 먹었어요. 당시 올리브의 <신동엽 성시경의 오늘 뭐 먹지>에 나온 음식이었거든요. 일식스타일로 카레를 만든 뒤, 국물이 자박한 우동으로 해먹는데 너무 맛있어보이더라고요. 그 때 마침 집에 고체카레도 있었고, 다른 재료들도 있어서 만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맛있게 드시며 좋아하셨어요.

 

 사실은 저는 작년에 운동을 시작하면서 요리에 빠지게 됐습니다. 웨이트 하고 오면, 집에서 맛있는게 먹고 싶다보니 요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가지 요리들을 하게 됐습니다. 파스타, 브리토, 볶음밥, 짬뽕, 돈까스부터 해서 볶음, 구이, 찌개, 튀김, 찜, 덮밥,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뭐 참 다양하게 여러 요리들을 했죠. 재밌기도 하고. 하고나서 맛있게 먹을 땐 더 없이 행복하고. 설거지 깨끗하게 해놓으면 아 이렇게 한끼도 끝이구나 하면서 뭔가 상쾌한 기분도 들고 그랬어요.

 

요리를 한다는 것의 의미.

 

 그러다 읽은 책이 <소년이여, 요리하라>라는 책이었어요. 격투기 해설가 김남훈님이 이렇게 얘기했더라구요. "요리를 한다는 것은 재료를 선택하고 요리해서 결국 '결과를 만들고 그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어쩌면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건 결국 요리를 하기 전과 한 후로 나눌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리는 온전한 '한 끼'를 책임진다는 것이니까요. 확실히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요리를 하기 전보다 지금 제가 좀 더 어른이 됐다고요.

 

두 사람을 위한 요리.

 

 <소년이여 요리하라>라는 책에는 격투기 해설가 김남훈님의 글도 실려있지만 다른 분들의 좋은 글도 많습니다. 그중에 제가 즐겁게 읽은 대목인데요.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세요. 열 한명을 위해 취사병으로서 요리하는 것과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는 글이에요. 서평가 금정연님의 글입니다.

 

 그날 이후 알리오 올리오는 우리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알리오 올리오를 먹을 때마다 나는 내가 했던 말을 취소해야 했는데, 네 번째 요리를 먹을 때는 세 번째 요리가 완벽했다는 말을 취소하고, 다섯 번째 요리를 먹으면서 네 번째 요리야말로 완벽했다는 말을 취소하는 식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자니 조금 쑥스럽지만, 요리를 거듭하면 할수록 내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는 점점 더 맛있어졌다. 아니면 내 입이 길어졌거나. 분명한 건 요리가 즐거워졌다는 사실이다. 혼나지 않기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억지로 하던 요리와는 달랐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두 사람을 위한 요리(다운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심지어 어머니와 나를 위한 요리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열 한 명은 너무 많다. 한 명은 너무 적다. 내가 무슨 요리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할 수는 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자신 있다. 그리고 그 목록은 차차 늘어날 거라고 믿는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실패를 할 수도, 도저히 먹지 못할 '괴식'이 탄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도 함께 웃을 수는 있다. 어쨌거나 우리가 같이 하는 또 한 번의 식사다. 따뜻한 접시를 앞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는다. 그리고 먹는다. 둘이 함께. 결국 사랑이다.

 

 

 이 글을 읽으니 저도 '두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하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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